Essay
“기억 나무, 제주 동복리 폭낭" (숲과 문화, 2026.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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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나무, 제주 동복리 폭낭"
이열
(나무사진가, 작가)
제주 구좌읍 동복리 동복로를 따라 걷다 보면 한쪽으로만 자란 커다란 ‘편향수’가 보인다.
비록 강한 바람에 밀려 한쪽으로 치우쳐 자랐으나 평생 바람을 견디면서 살아온 강인한 모습은 마치 가난 속에서도 지혜로 빛나는 현자의 눈처럼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바로 150살이 넘은 동복리 ‘바람 타는 폭낭(팽나무)’이다. 처음 이 나무를 보았을 때, 이 나무는 제주도를 상징하는 나무라고 나는 직감했다. 바람 부는 추운 날, 별 하나 없던 밤에 사진에 담았다. 2013년 겨울이었다.
역사적으로 제주도는 임진왜란 때 말과 소를 조정에 진상하여야 하였으며,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제국주의 수탈의 대상이었다. 더욱이 해방 후 발생한 4.3은 제주 민중이 겪은 반인륜적인 최대의 집단 학살이었다. 자리왓의 폭낭, 북촌리의 폭낭이 그러하듯이, 이 나무가 있는 ‘장복밭’, 그 바로 옆 '굴왓'은 이 마을 주민이 군과 경찰, 서북청년단과 대한청년단 같은 정치깡패 등이 동원된 토벌대에게 학살당한 장소이다.
1949년 1월 17일 월정에서 함덕리로 이동 중인 토벌대 트럭이 북촌리를 지날 때, 부녀자와 아이들을 가리지 않는 토벌대의 무차별 학살에 저항하던 소규모 무장대에 기습받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토벌대가 곧바로 북촌리와 인근 마을인 동복리 주민들을 대량 학살한 것이다. 이날 하루에 북촌리에서 300~420여 명이, 동복리에서 86명이 학살당했고 동복리 마을은 전소되었다.
4.3으로 인한 제주도 전체 인명피해는 15,000~30,000명으로 추산, 이는 당시 제주도 전체 인구의 약 10분의 1에서 최대 8분의 1에 해당하며, 제1공화국 이후 6·25전쟁 다음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단일 사건이었다. 이날 동복리 학살의 첫 집결지였던 '장복밭'의 폭낭, 지금은 주변에 건물이 들어서서 지형마저 변해버렸지만, 나무는 바람을 견디며 살아서 그날의 비극을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인간 너희들끼리 죽이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라고. 당시 70살이었던 나무가 70년이 넘도록 살아 남아 인간의 기억을 간직하고 상기시킨다. 그 나무를 보는 동복리 마을 주민들에게 나무는 아픈 기억의 도서관일 지도 모르겠다.
긴 세월, 강한 바람을 견디며 살아온 저 동복리 폭낭이 역동적이고 멋진 나무가 되었듯이, 그리고 제주가 이제는 누구나 가고 싶고 선망하는 땅이 되었듯이, 제주 사람들의 마음에도 그런 날이 오기를 저 동복리 폭낭은 바라고 있지 않을까. 제주도 갈 때마다 시간 내어 찾는 저 나무가 오래 건강하기를,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우리 인간을, 그럼에도 오래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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