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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느린 인간> 출판 안내

Updated: Jun 23


느린 인간

이열 글.사진


출판: 글항아리

가격: 28,000원 <서문> 수안보에 살 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1시간 이상 걸어야 하는 등굣길 중간에 마치 터널처럼 고목이 우거진 곳에 서낭당이 있었고, 그 서낭당 누각에는 할머니 모습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앞 제단에는 아주 가끔 떡과 음식이, 그리고 약간의 동전이 올려져 있기도 하였다.

아직 따스한 떡을 먹고 동전을 가져다 과자를 사 먹은 어느 날 하굣길에 천둥 번개와 함께 억수로 비가 쏟아지던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집에 가기 위해 서낭당을 지나야 하는데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잘못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차마 그곳을 지나지 못하고 몇 시간 동안 비를 맞았다. 그 후로 커다란 고목을 보면 나뭇가지를 배경으로 서낭당에 걸려 있던 할머니의 ‘그로테스크(grotesque)’한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렇다고 나무가 내게 무서운 존재는 아니었다. 

인적 드믄 시골의 아이에게 마을의 나무는 언제나 친구였고, 놀이터였다. 친구들과 나무 주위에 모여 놀다가 밥 먹으라는 소리에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결국에 혼자 남아 할머니가 어서 불러 주길 기다리는 그 순간에도 나무는 언제나 내게 든든한 존재가 되어 주었다.


커서도 오래되고 멋진 나무를 보면 주위를 서성거리며 쉬이 떠나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광고 사진가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으나 오랜 꿈이던 작가가 되고자 결심했을 때, 내 사진 인생의 주제가 무엇이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이미 촬영한 밀착 인화된 사진들을 뒤적이던 어느 날, 내가 그동안 촬영해 온 사진 중에 나무 사진이 가장 많았으며, 나무를 내 평생의 주제로 정한다면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고 나의 작업을 해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나무 사진가로 살아가기로 결심하였으나, 첫 나무 사진 전시인 ‘푸른 나무’ 전시의 계기는 2012년 우연히 주어졌다. 나무가 많고 개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양재천 둑방길 옆에 원하던 작업실을 구하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양재천 둑방길의 나무마다 번호가 적힌 붉은 노끈이 매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주변 카페에 물었으나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고, 심지어 많은 이들은 나무에 갑자기 번호표가 생겼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마침내 한 카페 주인으로부터 이 나무들이 새로 지어지는 근처 보금자리 아파트 이면도로 확장을 위해 모두 베어진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궁금하였다. 

출퇴근 시간 강남대로의 체증이 저리 극심한데 여기에 이어지는 도로 하나 넓힌다고 차량 흐름이 빨라질까? 한 서초구의원을 통해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를 들었다. 전혀 빨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그날부터 나는 양재동 일부 시민들과 함께 서명운동을 시작하였다. 3개월동안 약 3천 명의 서명을 받아 서울시와 SH공사, 서초구에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동시에 그동안 촬영해 온 나무 사진과 양재천의 나무 사진들을 더하여 전시회를 추진하였다. 시민들에게 나무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다. 

결국 일이 커지자 서초구는 이미 끝난 시민 공청회를 다시 개최하였고, 참석한 시민 만장일치로 기존 도로 확장안이 아닌, 건너편 시민의숲 둑방길 지하로 터널을 뚫는 새로운 안이 채택되었다. 결국 나무를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전시는 뒷북이 되었으나 양재천의 나무들이 아니었다면 ‘푸른 나무’ 전시는 더 미루어졌을 것이 확실하다. 나무를 살리기 위한 전시가 결국 나무 사진 전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나무가 나무 사진가를 만들었다. 


이후로 ‘숲’, ‘꿈꾸는 나무’, ‘히말라야’, ‘올리브나무’, ‘바오밥’, ‘신목 시리즈’ 등 많은 나무 사진을 시리즈로 발표하였다. 그 시리즈들을 통해, 밤에 조명을 받아 인간과 같이 지구의 주인공이 된 아름다운 나무들, 최종 작품으로 완성된 경이로운 나무 사진들을 전시장에서 선보였으나 시각예술인 사진의 특성으로 인해 그 과정에서 ‘보여줄 수 없는 것’들, 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은 사진에 담기지 못하였고 기록으로도 남지 않았다. 신안의 작은 섬에서 팽나무를 촬영할 때 밭에서 일하던 노부부가 내게 들려준 작지만 따스한 삶의 이야기들, 바닷가 마을에서 죽음이 멀지 않은 노인이 들려준, 나무와 함께 한 청춘의 찬란한 기억들이 전시장에는 담기지 않았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에게 살아갈 힘과 용기를 줄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소소하지만, 따스한 기억들, 누군가와 함께 한 뜨거웠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을 겪고 마침내 남겨진 결정체와 같은 빛나는 기억들이 아닐까.


2022년 가을, 남해에서 ‘남해신목’ 시리즈를 촬영하며 나는 나무를 ‘시간의 기억’, ‘인간의 염원을 기록한 기억의 도서관’이란 내용의 작가 노트를 썼다. 오랜 시간 인간과 함께 살아온 나무가 인간에게 그리했듯이, 나무를 촬영하며 알게 되고 듣게 된,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들이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필요로 하는 영양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소망으로 이 기록을 시작한다.


더불어 이 지구의 주인공은 인간만이 아님을, 나무도 이 지구의 주인공임을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께서 기억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무 없이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 당연히 가져야 할 소중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국내의, 그리고 세계의 경이로운 나무들 소식을 접하면 가슴이 요동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나무는 느린 인간이고, 인간인 나는 빠른 나무이니까.


끝으로, 소소한 이 기록을 시작할 수 있게 부축이고 도와준 정연혜 기획자, 나무에 대한 사랑만을 보고 선뜻 출판을 허락해 주신 글항아리 강성민 대표님, 그리고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모델이 되어주고 살아갈 힘을 준 나의 나무들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전한다.



<이야기 목차> 1 제주의 상징 폭낭 33

2 천 년의 올리브나무 41

3 신들이 사랑한 나무, 바오밥 49

4 800년의 기다림, 볼음도 은행나무 57

5 천 년을 산 제주 왕폭낭 65

6 지구의 지붕, 그 아래 랄리구라스 71

7 수많은 생명의 안식처, 맹그로브 79

8 이순신 장군도 쉬어간 대벽리 왕후박나무 87

9 우실로 마실 가다 91

10 아닐 비⾮, 비자 榧⼦나무 97

11 동백꽃이 언제 가장 아름다운가요? 103

12 예수의 가시관, 산사나무 111

13 원시의 꽃 목련 117

14 숲의 지배자, 서어나무 123

15 맛있는, 그러나 매서운 망고나무 129

16 참성단 소사나무 135

17 비처럼 음악처럼, 레인트리 141

18 후박엿 후박나무 147

19 분계해변 여인송 153

20 결혼에 성공한 준경묘 미인송 159

21 시민의숲 플라타너스 165

22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가림성 느티나무 171

23 신주쿠 교엔 벚나무 179

24 가장 아름다운 반계리 은행나무 185

25 화촉을 밝히는 자작나무 191

26 살아 돌아온 화석, 메타세쿼이아 197

27 팽나무들의 친목회, 도초도 팽나무길 203

28 봉황대 느티나무 207

29 화염수, 아프리칸 튤립나무 211

30 야사리 운동장 느티나무 215

31 지심도 팔색조와 동백나무 219

32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227

33 충효동 왕버들 군 233

34 선암사 탑비전 참나무 239

35 백련사 배롱나무 245

36 용문사 은행나무 251

37 두물머리 느티나무 257

38 아까시는 언제나 향기와 함께 263

39 공세리 성당 팽나무 269

40 파주 아버지 느티나무 273

41 법성포 숲쟁이와 요술상자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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